박기순 덴톤스 리 
법률사무소 상임고문
현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 현 외교부 정책자문
위원회 경제분과 위원장, 
전 중국삼성경제연구원장
박기순 덴톤스 리 법률사무소 상임고문
현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 현 외교부 정책자문 위원회 경제분과 위원장, 전 중국삼성경제연구원장

한중 교역은 1992년 수교 이후 급속한 증가세를 보여 지난 30년간 47배 규모로 확대됐다. 수교 첫해인 1992년을 제외하고 우리는 작년까지 대(對)중국 교역에서 줄곧 흑자를 지속해 왔다. 이에 따라 지난 2000년~2022년 한국의 무역수지 통계를 보면 한국의 전체 무역수지 흑자(7586억달러) 가운데 약 91%(6874억달러)가 중국과 교역에서 발생했다. 

한중 간 교역 구조를 보면 우리 기업들의 대중 투자가 수교 초기부터 중국의 저임금을 활용한 제조업 위주로 이루어져 주로 중간재와 자본재 위주의 무역 형태를 보였다. 즉, 우리 기업이 중국으로 자본재와 중간재를 수출해 중국에서 가공, 제조 후 중국 내 판매 또는 제3국으로 수출하는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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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의 대중 무역수지는 지난 2013년 628억달러(약 81조6400억원)의 흑자를 시현한 이후 하락 추세를 보이면서 2022년에는 2분기부터 적자로 돌아서 작년 한 해 12억5000만달러(약 1조62500억원)의 흑자를 기록하는 데 그쳤고, 중국은 우리의 최대 흑자 대상국에서 흑자 순위 22위로 급락했다. 올해 대중 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설 경우 중국은 흑자 순위국에서 사라지고 적자 순위국에서 찾아보게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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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기술 추격 따른 구조적 요인 

한국의 대중 무역수지가 작년 2분기부터 적자를 보이면서 그 원인에 대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이 야기한 자원 가격의 상승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인지 아니면 한국의 경쟁력 약화에 따른 구조적인 문제인지에 관한 논쟁이 있었다. 이 논쟁은 우리의 대중 적자가 지속되면서 점차 중국의 기술 추격에 따른 구조적인 문제로 기울어지고 있다. 중국의 기술 추격과 산업 발전에 따른 급속한 성장으로 중국 내에서 한국산 수입품을 대체할 수 있는 대체재가 출현함에 따라 한국의 대중 수출 감소, 무역수지 흑자 축소, 적자 시현으로 이어진 것이다.

중국의 기술 발전으로 중국 경제가 저임금을 활용한 산업구조에서 기술집약형 산업구조로 전환하면서 한중 간 경제 관계도 ‘보완적 경제 파트너’에서 ‘중국은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 서로 경쟁하는 관계’로 전환됐다. 이에 따라 최근 3년간 한국의 대중 흑자 품목 수는 감소(2020년 12월 340개→2022년 9월 282개)하고 적자 품목 수는 증가(2020년 12월 869개→2022년 9월 937개)했다. 이런 현상은 향후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중국의 기술 발전이 그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9년 중국사회과학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중국의 성장률에서 기술 발전을 나타내는 지표인 TFP(Total Factor Productivity·총요소생산성)의 기여도가 30%를 웃돌았다. 

중국으로부터 수입이 증가하는 것도 중요한 요인이다. 기술 발전을 나타내는 소위 소재·부품·장비에 대한 중국 의존도가 계속 높아지고 있다. 특히 반도체나 배터리 같은 전략산업에서 대중 의존도도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반도체 제조에 사용되는 산화 텅스텐의 중국 의존도가 95%에 달하고, 자동차에 사용되는 마그네슘은 거의 전량을, 고성능 배터리에 쓰이는 수산화리튬은 84%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주요 7개국(G7)을 포함한 주요국 가운데 중간재에 대한 중국 의존도(약 28%)가 한국이 가장 높다는 사실은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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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건비 상승과 미·중 갈등 영향 

지난 2012년 삼성전자는 휴대폰 제조 사업을 중국에서 철수하기로 했다. 중국의 인건비가 올라 중국에서 생산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반면 당시 베트남은 중국에 비해 인건비가 절반에도 미치지 않았다. 생산 기지로서 중국의 매력도가 떨어진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 진출 기업들이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지역으로 이전했으며, 중국에서 생산 활동을 위해 중국으로 수출해 왔던 많은 중간재 등이 베트남 등 타 국가로 전환되었다. 우리의 대중 수출은 감소했지만 2022년 베트남이 우리의 최대 무역 흑자국으로 부상한 배경이다.

임금 상승 이외에 대중국 투자 활동을 주저하게 하는 요인으로 미·중 갈등이 있다. 미국의 대중 관세 인상, 디커플링, 디리스킹 등은 모두 기존의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가 누리던 혜택을 박탈하는 조치다. 중국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게 되면 관세가 오르거나, 중국산 소재·광물을 사용한 전기차는 보조금 배제 등의 조치로 미국 시장 진입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따라 한국 기업의 대중국 투자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이는 대중 수출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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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과제

중국의 기술 추격과 질적 성장으로의 전환은 중국의 수입 대체를 촉진해 왔고, 이는 우리의 대중 수출을 억제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이제 한중 간 산업에서 우리가 확실하게 우위를 지키는 품목은 반도체뿐이다. 반도체마저 중국에 추격을 허용하면 우리의 대중 무역 적자는 고착화돼 더 이상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다. 마침 미·중 간 첨단기술 경쟁으로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기술이전이 거의 봉쇄되고 있다. 우리는 뜻하지 않게 주어진 이번 기회를 중국과의 기술 격차를 유지, 확대하는 호기로 삼아야 한다. 

또한 중국과의 교역 구조를 중간재 위주에서 소비재의 비중을 확대하는 식으로 전환하는 전략도 필요하다. 오랜 기간 한국 시장에서 검증받은 소비재를 중국으로 수출하는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한다. 일부 기업이 중국에서 희망이 없다고 여겨온 의류 산업을 패션 산업으로 발전시켜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물론 이를 위해 중국의 언어는 물론 문화, 사회, 시장을 잘 이해하고 소비자와 소통할 수 있는 중국향(向) 인재 육성은 필수다. 

한편, 중국의 자국 산업‧기업 보호주의 정책도 주목해야 한다. 중국이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는 전기차 산업의 경우 그 핵심인 배터리에 대해 한국 기업들은 지난 7년간 중국에서 생산활동을 하더라도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돼 왔다. 

중국 시장이 아무리 크다 해도 보호주의 정책, 애국 소비 풍조 보급 및 확산 등에 의해 봉쇄된 시장은 우리의 시장이 아니다. 다소 작더라도 개방된 제3 시장이 우리에게는 더 큰 시장이 될 수 있다. 중국 시장 공략뿐만 아니라 세계시장으로 시장 다변화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